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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제5회.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흔적2026-09-11 17:57
작성자 Level 10

제5회.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흔적

제5회. 아버지가 남긴 마지막 흔적.png


1. 1117이라는 숫자


도현은 손바닥 위에 놓인 열쇠를 한참 바라봤다. ‘1117’. 단순한 숫자라고 생각하기에는 너무 정확했다. 30년 전 재호가 사라진 날짜와 같았다. “이 열쇠로 대체 뭘 열 수 있는 거야?” 도현이 묻자 재호는 잠시 망설였다. “네 아버지가 예전에 회사 근처에 작은 창고를 하나 가지고 있었어.” 도현은 처음 듣는 이야기였다. 아버지는 평생 평범한 직장인으로만 알고 있었다. 재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날 밤, 네 아버지가 나한테 그 열쇠를 보여줬어. 그리고 말했지. ‘이 안에 모든 증거가 있다.’” 도현의 손끝이 떨렸다. “그런데 왜 나한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 재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오래된 주소가 적힌 종이를 내밀었다. 도현은 주소를 확인하는 순간 숨이 막히는 듯했다. 그곳은 아버지가 돌아가시기 전까지 살았던 집과 불과 몇 블록 떨어진 곳이었다.

2. 사라진 창고


도현과 재호는 그날 오후 주소가 적힌 곳으로 향했다. 하지만 그 자리에는 오래된 창고 대신 새로 지어진 상가 건물이 들어서 있었다. 도현은 허탈하게 주변을 둘러봤다. “창고가 없어졌잖아.” 재호가 건물 뒤편을 살펴보다가 멈춰 섰다. 오래된 담벼락 한쪽에 녹슨 금속판이 붙어 있었다. 그 위에는 희미하게 숫자 네 자리가 남아 있었다. 1117. 도현이 가까이 다가가 손으로 먼지를 닦아냈다. 그러자 금속판 아래에서 작은 열쇠구멍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게 아직 남아 있었어.” 재호가 중얼거렸다. 도현이 열쇠를 꽂자 뜻밖에도 딸깍 하는 소리가 났다. 하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 순간 뒤에서 발소리가 들렸다. 두 사람이 동시에 돌아보자 검은 모자를 눌러쓴 남자가 골목 끝에 서 있었다. 남자는 잠시 도현을 바라보다가 아무 말 없이 돌아섰다. 도현이 뒤쫓으려 했지만 남자는 이미 골목 밖으로 사라진 뒤였다.


3. 아버지가 숨긴 이름


도현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아버지의 유품을 다시 꺼냈다. 오래된 서류봉투와 사진첩을 하나씩 살펴보던 중 낡은 수첩 한 권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첫 장에는 아버지의 글씨로 이름 하나가 적혀 있었다. ‘김미숙.’ 도현은 한동안 그 이름을 바라봤다. 자신의 아내 이름이었다. 그런데 다음 장에는 더욱 충격적인 문장이 적혀 있었다. ‘재호에게 문제가 생기면 미숙에게 맡길 것.’ 도현의 머릿속이 새하얘졌다. 아내는 30년 전부터 모든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일까. 그때 거실에 놓인 전화가 울렸다. 도현이 전화를 받자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침묵이 이어졌다. 잠시 후 낮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이제 그만 찾아.” 도현은 숨을 삼켰다. 그리고 상대가 마지막으로 남긴 한마디에 손에서 수화기가 미끄러졌다. “네 아버지가 죽기 전 마지막으로 만난 사람은… 네 아내였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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