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보기
제목4회. 그날 밤, 나도 그곳에 있었다2026-09-11 17:53
작성자 Level 10

제4회. 그날 밤, 나도 그곳에 있었다

제4회. 그날 밤, 나도 그곳에 있었다.png


1. 지워진 기억


“30년 전 그날 밤, 너도 그 자리에 있었어.” 재호의 말이 끝나는 순간 도현의 머릿속이 멍해졌다. 강변, 어두운 도로, 빗소리. 설명할 수 없는 장면들이 파편처럼 떠올랐다. 도현은 이마를 짚었다. “말도 안 돼. 나는 그날 회사에서 늦게까지 일하고 집에 있었어.” 재호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네가 직접 강변으로 왔어.” 도현은 믿을 수 없다는 듯 재호를 바라봤다. 그러자 재호가 낡은 사진 한 장을 내밀었다. 사진 뒷면에는 날짜가 적혀 있었다. 1996년 11월 17일. 그리고 사진 한쪽 구석에는 도현의 차가 찍혀 있었다. 도현은 사진을 움켜쥐었다. 이상한 것은 그 차의 번호판까지 자신의 차와 정확히 같다는 것이었다.

2. 아버지의 시계


도현은 사진 속 네 번째 남자를 다시 바라봤다. 어두운 얼굴 때문에 누구인지 알아볼 수 없었지만 손목에 찬 시계만큼은 눈에 들어왔다. 낡은 가죽줄에 금빛 테두리가 있는 오래된 시계였다. 도현은 순간 숨을 멈췄다. “이 시계…” 재호가 물었다. “왜?” 도현은 대답하지 못했다. 그 시계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늘 차고 다니던 시계와 똑같았다. 아버지는 1997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고, 그 뒤 시계는 사라졌다. 도현은 집으로 돌아오자마자 오래된 가족사진을 뒤졌다. 그리고 아버지의 사진 속 손목에서 같은 시계를 발견했다. 그 순간 미숙의 말이 떠올랐다. ‘당신 아버지에 대해서는 내가 말할 수 없는 일이 있어.’ 도현은 급히 서랍을 열었다. 그런데 그 안에는 자신이 한 번도 본 적 없는 작은 열쇠 하나가 들어 있었다. 열쇠에는 숫자 ‘1117’이 새겨져 있었다.

3. 열쇠가 가리킨 곳


도현은 다음 날 아침 재호를 다시 찾아갔다. 열쇠를 보여주자 재호의 얼굴이 굳었다. “그걸 어디서 찾았어?” “내 집에서.” 한동안 침묵하던 재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 열쇠는 네 아버지가 가지고 있던 거야.” 도현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재호는 오래된 기억을 더듬듯 말을 이었다. “30년 전 그날 밤, 네 아버지도 강변에 있었어. 그리고 내가 도망치기 직전에 네 아버지가 누군가에게 봉투를 건네는 걸 봤어.” “누구에게?” 도현이 다급하게 물었다. 재호가 대답하려는 순간, 그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화면에는 발신번호가 표시되지 않았다. 재호가 전화를 받자 아무 말도 하지 않던 상대방이 짧게 한마디를 남겼다. “도현에게 열쇠를 돌려받았군.” 그리고 전화는 끊겼다. 도현의 얼굴이 굳었다. 30년 동안 자신만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비밀을, 누군가 지금도 지켜보고 있었다.

댓글
자동등록방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