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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2회. 수첩 속의 아내2026-09-08 14:09
작성자 Level 10

제2회. 수첩 속의 아내


제2회. 수첩 속의 아내.png


1. 믿을 수 없는 이름


도현은 노인이 사라진 골목을 한참 동안 바라봤다. 방금 들은 말을 도저히 믿을 수 없었다. 30년 동안 죽었다고 생각했던 재호를 오늘 밤 만나게 될 거라는 말. 그동안 도현은 재호가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살아왔다. 하지만 손에 들린 낡은 수첩은 그 믿음을 흔들고 있었다. 도현은 급히 집으로 돌아와 수첩을 펼쳤다. 첫 장에는 1996년 11월 16일이라는 날짜가 적혀 있었다. 페이지를 넘길수록 회사 자금과 관련된 숫자와 알 수 없는 이름들이 나타났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도현의 손이 멈췄다. ‘11월 17일 밤, 미숙을 믿어도 되는가?’ 도현의 얼굴이 굳어졌다. 미숙. 4년 전 세상을 떠난 아내 김미숙의 이름이었다. 도현은 몇 번이나 글자를 확인했다. 잘못 본 것이 아니었다. 분명히 아내의 이름이었다. 재호가 사라진 바로 그날 밤, 재호는 미숙을 의심하고 있었다. 도현은 천천히 의자에 앉았다. 그날 밤의 기억을 떠올리려 했지만 이상하게도 중요한 부분이 흐릿했다. 미숙은 그날 집에 있었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지금까지는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런데 재호의 수첩은 그 기억이 틀렸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말하고 있었다. 도현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미숙이가 그날 밤 재호를 만났던 건가?”


2. 아내가 숨겨둔 사진


도현은 자리에서 일어나 안방으로 향했다. 미숙이 살아 있을 때 사용하던 장롱을 열고 맨 아래 서랍을 꺼냈다. 그 안에는 오래된 사진첩과 편지, 그리고 몇 년 동안 손대지 않았던 작은 상자 하나가 들어 있었다. 도현은 먼저 사진첩을 펼쳤다. 결혼식 사진과 가족사진, 아이들이 어렸을 때 찍은 사진들이 차례로 나타났다. 그러다 한 장의 사진에서 손이 멈췄다. 젊은 시절의 미숙과 재호가 함께 서 있었다. 두 사람은 마치 오래전부터 알고 지낸 사이처럼 자연스럽게 웃고 있었다. 도현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이런 사진이 왜 여기에 있는 거야?” 그는 사진을 뒤집었다. 뒷면에는 날짜가 적혀 있었다. 1996년 11월 10일. 재호가 사라지기 정확히 일주일 전이었다. 도현은 사진을 한참 동안 바라보다가 사진 사이에서 작은 종이 한 장이 떨어지는 것을 발견했다. 종이를 펼치는 순간 익숙한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미숙의 글씨였다. ‘재호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도현에게 사실을 말할 것.’ 도현은 숨을 멈췄다. 그런데 종이 뒷면에는 또 다른 문장이 적혀 있었다. ‘그 사람이 먼저 찾아오면 절대 믿지 말 것.’ 도현은 종이를 움켜쥐었다. 그 사람이 누구인지 알 수 없었다. 재호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전혀 다른 사람을 말하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그때였다. 현관 쪽에서 작은 소리가 들렸다. 무언가 문 아래로 밀려 들어오는 소리였다. 도현은 조심스럽게 현관으로 다가갔다. 문틈 아래에는 낡은 봉투 하나가 놓여 있었다. 봉투를 집어 든 도현의 손끝이 다시 떨리기 시작했다.

3. 30년 만의 재회


도현은 봉투를 열었다. 안에는 사진 한 장이 들어 있었다. 사진 속에는 젊은 시절의 도현과 재호, 그리고 미숙이 함께 서 있었다. 세 사람 모두 환하게 웃고 있었다. 도현은 사진을 보는 순간 이상한 기분이 들었다. 자신은 이 사진을 기억하지 못했다. 그런데 사진 뒷면에는 짧은 글씨가 적혀 있었다. ‘오늘 밤 11시. 옛 서울역 뒤편.’ 도현은 시계를 바라봤다. 밤 10시 40분이었다. 잠시 고민하던 그는 결국 외투를 걸쳤다. 노인이 말한 장소와 정확히 같은 곳이었다. 밤 11시가 되자 도현은 옛 서울역 뒤편에 도착했다. 주변은 어두웠고 차가운 바람이 불어왔다. 도현은 사람들의 모습을 살피며 노인을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도 나타나지 않았다. 10분이 지나고 20분이 지나자 도현은 자신이 속은 것이라고 생각했다. 돌아서려는 순간 어둠 속에서 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현아.” 도현의 발걸음이 멈췄다. 30년이 흘렀지만 잊을 수 없는 목소리였다. 천천히 뒤를 돌아보자 한 남자가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오고 있었다.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생겼고 머리카락은 희끗희끗했지만 도현은 단번에 알아봤다. “재호…?” 남자는 한동안 아무 말 없이 도현을 바라봤다. 그리고 아주 작게 웃었다. “오랜만이다.” 도현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죽었다고 생각했던 친구가 눈앞에 살아 있었다. 도현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너… 그동안 어디에 있었던 거야?” 재호는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품 안에서 낡은 사진 한 장을 꺼내 도현에게 내밀었다. 사진 속에는 젊은 도현과 재호, 그리고 미숙이 함께 서 있었다. 그리고 재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도현아. 네 아내가 나를 살린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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