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보기
제목제1회. 사라진 친구가 보낸 편지2026-09-08 14:03
작성자 Level 10

제1회. 사라진 친구가 보낸 편지


제1회. 사라진 친구가 보낸 편지.png


1. 30년 전 사라진 사람


박도현은 올해 예순셋이었다. 아내 김미숙이 세상을 떠난 지 4년. 그동안 도현은 특별한 일 없이 조용히 살아왔다. 자식들은 각자 가정을 꾸려 멀리 살고 있었고, 도현에게 남은 것은 오래된 집과 아내의 물건들, 그리고 잊으려고 애써온 한 사람의 기억뿐이었다. 서재호. 도현의 어린 시절부터 함께했던 친구였다. 하지만 재호는 30년 전 갑자기 사라졌다. 1996년 11월 17일 밤이었다. 당시 두 사람은 같은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어느 날 재호는 회사 자금 일부가 이상한 곳으로 빠져나가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도현에게 말했다. “이건 단순한 횡령이 아니야.” “그럼 뭐야?” 재호는 한참 동안 망설이다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가까운 사람이야.” 그 말을 마지막으로 재호는 사라졌다. 며칠 뒤 그의 차가 강변에서 발견됐다. 하지만 재호의 시신은 어디에서도 나오지 않았다. 사람들은 그가 회사 돈을 가지고 도망갔다고 했다. 도현도 겉으로는 그렇게 믿는 척했다. 하지만 마음속에서는 단 한 번도 그 말을 믿은 적이 없었다.


2. 낯선 편지


그날 오후, 도현은 우편함에서 낯선 봉투 하나를 발견했다. 보낸 사람의 이름은 없었다. 봉투를 열자 오래된 종이 한 장이 나왔다. ‘그날 밤의 진실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습니까?’ 도현은 한동안 종이를 바라봤다. 30년 동안 누구도 꺼내지 않았던 이야기였다. 그런데 편지 안에는 또 하나의 사진이 들어 있었다. 사진 속에는 젊은 시절의 도현과 재호가 서 있었다. 두 사람은 환하게 웃고 있었다. 도현은 사진을 뒤집었다. 뒷면에는 짧은 문장이 적혀 있었다. ‘재호는 죽지 않았습니다.’ 순간 도현의 손끝이 떨렸다. “말도 안 돼…” 그때 현관 밖에서 인기척이 들렸다. 문을 열자 처음 보는 노인이 서 있었다. 노인은 도현을 똑바로 바라보더니 낡은 수첩 하나를 내밀었다. “이걸 찾고 있었습니다.” “이게 뭡니까?” “서재호의 겁니다.” 도현은 숨을 멈췄다.


3. 수첩에 적힌 이름


노인은 수첩을 건네고는 뒤도 돌아보지 않은 채 골목 끝으로 사라졌다. 도현은 급히 집 안으로 들어와 수첩을 펼쳤다. 첫 장에는 재호의 이름과 날짜가 적혀 있었다. 1996년 11월 16일. 도현은 페이지를 넘겼다. 회사 자금에 관한 메모와 누군가의 이름을 암시하는 숫자들이 빼곡했다. 그러다 마지막 장에서 도현의 손이 멈췄다. ‘오늘 밤 내가 사라지면 박도현을 믿지 마라.’ 도현은 자신의 이름을 다시 확인했다. 분명히 자신의 이름이었다. 그런데 이상했다. 왜 재호는 자신을 믿지 말라고 적었을까. 그 순간 초인종이 울렸다. 문을 열자 아까 그 노인이 다시 서 있었다. 노인은 주변을 살피더니 아주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오늘 밤 열한 시.” “어디로 가야 합니까?” “옛 서울역 뒤편으로 오시오.” “거기서 누구를 만나죠?” 노인은 잠시 도현을 바라봤다. 그리고 뜻밖의 말을 남겼다. “당신이 30년 동안 죽었다고 믿었던 사람을 만나게 될 겁니다.”

댓글
자동등록방지
(자동등록방지 숫자를 입력해 주세요)